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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6

언젠가는 _ 조은 언젠가는 _ 조은​ ​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멜 것이다 ​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렸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 ​ 2020. 12. 26.
임진강가에 서서_원재훈 임진강가에 서서 누군가 미워지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선다 아주 잠깐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강물을 바라본다. 미워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얼굴 내 마음엔 어느새 강물이 흘러들어와 그 사람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준다 그래, 내가 미워했던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얼굴에 끼어 있던 삶의 고단한 먼지, 때, 얼룩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 사람의 아픔이 아니었을까? 미처, 내가 보지 못한 나의 상처가 아니었을까? 임진강가에 서면 막 세수를 한 아이의 얼굴 같은 강물만, 강물만 반짝이면서 내 마음의 빈틈에 스며들어 온다. 내가 미워한 것은 내가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서서 새벽 강물로 세수를 하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그대가 미처 보지 못했던 치욕스러운.. 2020.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