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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임진강가에 서서_원재훈

by eistelos 2020. 12. 26.

임진강가에 서서

 

누군가 미워지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선다

아주 잠깐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강물을 바라본다. 미워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얼굴  

 

내 마음엔 어느새 강물이 흘러들어와

그 사람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준다

그래, 내가 미워했던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얼굴에 끼어 있던 삶의 고단한 먼지, ,

얼룩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 사람의 아픔이 아니었을까?

미처, 내가 보지 못한 나의 상처가 아니었을까?  

 

임진강가에 서면

막 세수를 한 아이의 얼굴 같은 강물만,

강물만 반짝이면서 내 마음의 빈틈에 스며들어 온다.  

 

내가 미워한 것은

내가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면

그대여 임진강가에 서서

새벽 강물로 세수를 하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그대가 미처 보지 못했던 치욕스러운 삶의 눈물을 보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