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제 18일 _이야기의 전말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
섬기는 삶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고 섬기는 삶이란 눈에 띄지 않는 단조로운 일과 예고 없이 갑자기 주어지는 일을 많이 맡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르다가 무엇으로 질책을 받았건, 그것은 마르다의 손대접이나 그 집에서 마르다가 보여준 섬김의 삶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첫 문장에 주목해 보십시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로 들어가셨다."(눅10:38)... 이것은 우리가 이야기의 결말로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말하자면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고 난 후에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순회 세미나를 하고 계신 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부활과 승천 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그분의 하나님 나라 사역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이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곧 예루살렘의 절정 직전에 있었던 이 집중적인 가르침과 훈련의 시기를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보는 동시에 제가 앞에서 그냥 지나친 단어를 눈치채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분주하다'(distracted-정신이 팔려서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
분주하다는 것은 현실적이고 열심히 일하며, 손대접의 임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과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분주하다는 것은 "집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심이나 닻이 없어서 누구에 의해서든 무엇에 의해서든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날 누가가 보여주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계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한곳으로 모아 정리하시면서 앞으로 자신을 증거하고 자신에게 순종하며 살 거룩한 공동체로 자원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중심이었습니다. 결말의 때가 다가오면서 말 하나하나가 중요해졌습니다. 할일은 많았고--치유와 가르침, 설교와 손대접, 고난과 도움--그 일을 예수님의 방식대로 하는 법을 그들은 배워야 했습니다...예수님의 말하는 법을 배우고 그분의 방식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빠르게 탈진하거나 자신의 이기적인 야심을 가리는 방패로 예수님의 명성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들었습니다. 들음으로써 그녀의 상상력은 이웃의 필요를 알아보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현란한 종교와 실제적인 사랑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어떻게 개인적이고 직접적인지, 조작과 마술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물건이나 기능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그리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선물로 받는 것이 얼마나 큰 해방을 주는지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은 그 집을 떠나셔야 했으며, 더는 그곳에서 먹거나 주무실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마르다는 그날 훈련 받아야 했으며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듣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너무 많은 일을 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